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항암 100번 고통 너머 이제야...안선미(35세, 대장암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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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: 2018-12-31 / 조회수 : 90

여수요양병원 바로 이곳에 와서야 주님을 찾고, 
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.
주님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 
너무 죄송스럽습니다.

안선미(35세, 대장암) 



안녕하세요. 

  저는 5년 전 임신 중에 대장암 4기 간전이로 한 달의 여명을 진단받았지만 5년째 살고 있는 안선미입니다. 많이 부족하지만 저의 수기를 읽어보겠습니다.

  2014년 9월
드디어 꿈에 그리던 첫 우리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. 저에겐 눈에 넣어도 안아플 3살배기 첫째 딸. 무뚝뚝하지만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 그리고 뱃속엔 꼬물꼬물 5개월 된 둘째딸, 몇 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 장만한 우리집까지.. 모든 것이 완벽하리만큼 너무도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.

  그런데 며칠 전부터 시작한 기침이 멈추질 않으면서 기침을 할 때마다 오른쪽 갈비뼈 안쪽이 아팠습니다. 임신 중이었던 저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정기검진을 받은 후,내과로 가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었는데,그결과 엑스레이 사진속 간쪽의 색이 이상하다며 농양이 의심되니 얼른 대학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.

  이상하리만큼 낮은 빈혈수치
  비정상적으로 높은 염증수치
  그래도 전 별일 아닐거라 여기며 응급차에 몸을 실었습니다. 응급실에서 자세히 모든 검사를 마친 저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. 아기집 문인 양막이 열려 있어 뱃속의 아이가 흘러 나올 수 있는데, 24주인 아기가 지금 나오게 되면, 사망하거나 장애아로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.

 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.

  40도의 고열로 온몸이 땀범벅이 된 전 남편을 찾았습니다.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병실로 들어온 남편의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. 눈,코,입이 퉁퉁 부어 들어와 전 남편에게 물었지요.
  - 자기야 얼굴이 왜그래,,내가 암이라도 걸렸데?
  - 남편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떨군 채 울기만 합니다.

  최종진단명 <대장암 간전이>
  수술은 불가!!! 항암을 서둘러야 한다. 이대로 두면 한 달을 넘기기 힘들다.

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에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. 뱃속의 아기를 강제적인 수술로 출산을 해서 항암치료를 서두를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 방법을 찾아볼지..

  지금아기를 낳으면 장애아 혹은 죽을 텐데, 전 아이를 죽일수도 장애있는 아기를 남편에게 두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. 치료를 미루고 아이를 끝까지 품고 있겠다는 저의 선택에 슬픈 영화를 찍냐... 어리석은 모성애다 할지라도 전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.

  서울로 병원을 옮겨 암센터가 아닌 산부인과로 입원했습니다. 항암치료는 미루고 최대한 아이를 30주까지는 품고자 누워서 버텨야했습니다. 

  이런현실에 울 수도 없었습니다. 울면 배에 힘이 들어가 아기가 나올 수도 있어서, 최대한 모든 생각을 버리고 가만히 누워 밥을 먹고, 누워서 변을 보고 누워서 티비를 보고,,누워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.

  암진단과 조기출산의 위험. 이런것보다 날 더 가슴 아프게한 건 갑작스럽게 엄마아빠 없이 혼자 집에 두고온 첫째 딸이었습니다. 이때 처음, 그리움이란 것을 가슴 사무치게 느꼈습니다.
시간이 흐르면서 제 몸속 암덩이들은 더 커져만 가고 통증이 밀려왔지만, 하루라도 더 아이를 품어야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29주를 지나 30주가 되던 첫날, 진통이 시작되었고,드디어 둘째딸을 자연분만하게 되었습니다.

  7개월 반만에 나온 미숙아지만 우렁찬 울음소리로 제 배위에 올려졌을 때.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.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 후 항암을 시작했습니다. 아직 제 몸은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었고,75kg까지 부어 생살이 찢겨져 피가나고,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.

  그래도.
  그래도.
  그래도... 저는 걸었습니다. 피가 나고 아파도 걸었습니다. 걷고 또 걸었습니다. 
그래야 인큐베이터에 있는 제 아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. 온 몸이 너무너무 아프지만 아기를 품을 땐 세상을 다가진 듯 정말 행복했습니다.

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는 다행히도 무탈하게 쑥쑥 자랐고, 항암 중인 저는 머리가 다 빠지고, 뼈만 남은 몸이었지만 사랑스러운 두아이와 함께하는 이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.

  죽음을 상상했습니다.
 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진 어린 두 딸, 자식을 앞세운 부모님, 남편, 단짝 친구...
그 상상은 곧 제가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.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우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, 전 정말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.

  계속되는 항암에 부작용은 다양하게 저를 괴롭혔습니다.
탈모, 피부갈라짐, 여드름, 발톱은 빠지고 입 안은 다 헐고 눈은 짓무르고..그러다 다모증까지 와서 순악질여사처럼 눈썹이 만날뻔도 하고 태어나 처음 구렛나루도 생겼습니다.
그때마다 대처하고 치료하면서 느꼈습니다.
아... 부작용도 결국은 다 지나가는구나...

   그렇게 버티기를 1차 항암제로 54번을 하고, 드디어 대장을 절재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. 어쩐지 완치에 한발 다가선 기분에 힘들고 아파도 잘 견디며 2차 항암제로 20번 정도를 더 항암하였습니다.


  하지만 사람의 일은 참 뜻대로 되지않았습니다.
긴병에 효자 없듯 남편도,부모도, 형제자매도 나자신까지 없었습니다. 시댁과의 불화에, 가족들의 무심함에 아니, 무뎌감에 많이도 힘들었지요.그러던 중 위암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. 대장암은 보통 간과 폐로 전이가 잘 되는데 위로 전이가 된 경우는 이례적이었습니다. 저는 겉잡을수 없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차 결국 마음까지 모두 암세포가 가득차게 되었습니다.

 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.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, 허공에 소리 질렀습니다.
하나님은 계십니까? 
정말 존재하시나요? 
저 사람은 저렇는데 왜 잘 살지요? 
저 범죄자는 왜 살려두시는거죠? 
꼭 이렇게까지 저를 죽이시려하는 이유가 뭐죠?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...
신은 없다! 주님은 없다!!

 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. 
교회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저를 위로하지만, 자신이 아님에 안도하는 그 숨을 느꼈습니다. 저는 제 몸에 칼을 들이댔고, 아파트 옥상을 서성거렸습니다.

  하지만, 유일하게 순수하게 저를 위로하고 안아준 건 바로 저의 어린 두 딸이었습니다. 아이들에게는 저의 우울함과 슬픔을 꼭꼭 숨긴 채 그저 엄마로만 살며 항암을 계속했고, 집안 살림과 양육, 며느리노릇까지 하며 100번을 넘게하다 결국은 쓸수있은 모든약을 다 써버렸습니다...   결국은 그렇게 되었습니다...

  2018. 11월 22일
CT 사진을 보며 주치의 선생님께서 간에 있는게 더 커졌다. 아마... 두달 전으로 자기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.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마약성 진통제만 가득 처방해 주셨습니다.

  두려움과 공포는 저를 집어삼켰고 저는 뭐라도 해야했습니다.

  그러다 지인분의 소개로 여기 여수요양병원에 오게 되었고, 종교있나요란 질문에 무교라고 또박또박 적었습니다. 그로부터 매일 제 치료에 도움을 받고자 아침,저녁으로 말씀을 들었고, 원장님의 신환자교육을 받고, 여기서 나오는 음식만 먹으면서 저는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.
제가 이렇게 큰병에 걸린 건 주님께서 저를 방치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음식은 피하고, 잘못된 식습관과 세상에서의 스트레스, 잘못된 생활패턴으로 내가 나를 방치하고 무심해서 이런 병에 걸린 것이고,내가 내 몸을 사랑하지 않아서였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원망이 사르러들기 시작했습니다. 오히려 주님은 이런 저를 몇 번이나 살리셨고, 저의 아기까지 살리셨는데 그걸 외면하고 다 내스스로 했다는 오만함을 깨달으며 나머지 원망과 미움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..

 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항암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다 주님이 절 얼마나 살리시려 하신 건지...

  항암을 백 번 넘게 하고 5년 즈음 되어 이곳에 와서야 주님을 찾고,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. 주님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럽습니다.

 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?

  아직은 믿음이 부족해 가끔씩 밀려오는 통증에 두려워하고 눈물도 흘리지만... 2019년에는 제가 혹시라도 더 나빠지더라도 주님께 감사기도 드릴 수 있길 바라는 저의 새해 소망입니다. 

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. 긴 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.

주님 감사합니다.